명품은 세월이 빚어낸 위대한 발명품이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 속성이 발명과 비슷하고 종종 의도되지 않은 가운데 빚어지는 것 또한 발명과 흡사하다. 패션의 역사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구찌를 보자. 치열한 장인 정신으로 점철된 오랜 세월이 가죽 제품 수공업을 패션의 왕좌로 올렸고 명품의 명성을 안긴 것이 2차 대전이었음은 필연과 우연이라는 씨줄과 날줄의 합작이다. 이탈리아어 에스페리언자(Esperienza, 경험). 에스페리언자 제품에는 말을 탄 사람을 새긴 로고가 문장(紋章)처럼 새겨져 있다. 1900년대 고급 말안장을 만들던 가죽의 명가 구찌의 역사를 담아 정통성을 웅변하고 있다. 이 에스페리언자가 한 젊은이를 말 잔등에 태우고 서울에 나타났다. 화장품을 싣고. 바로 박병훈 클럽씨엠 대표와 에스페리언자 제품이다. 구찌, 아니 정확히 구찌오 구찌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박 대표는 가문 족보를 두루 꿰며 정사와 야사를 섞어 재미있게 보따리를 풀었다. 창업자와 현재의 에스페리언자를 창설한 장본인은 이름이 같은 구찌오 구찌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전쟁 통에 가죽이 부족해 캔버스 천을 사용하며 가방 표면에 GG를 넣어 선풍을 일으킨 것을 알게 된 것은 이야기의 중반 무렵이었다. 그 구찌가 에스페리언자를 들고 한국에 와서, 그것도 대기업도 아니고 정통 화장품업체도 아닌 박 대표를 택한 것일까. “한 3년을 따라 다녔어요. 구찌가 뉴욕에 설립한 회사가 있는데 그 회사의 서울 자회사와 인연이 닿아 신뢰를 얻으며 접촉이 됐지요. 참 까다로운 사람들이예요.” 그들은 박 대표에게 구체 계획을 내라고 하는 통에 많이 고생했다고 한다. 결국 올해 에스페리언자 아시아 총판계약을 따냈다. 즉 아시아 모든 나라는 에스페리언자 제품을 팔려면 클럽씨엠의 허락을 얻어야 한다. 에스페리언자의 첫 작품으로 왜 헤어 제품을 골랐는지 궁금했다. “본래 기초 제품부터 하려 했지만 시장 상황이 안 좋고 백화점 입점하는 것도 쉽지 않아 방향을 틀었죠.” 의외로 솔직한 대답이 돌아왔다. 헤어 제품은 브랜드 홍보 효과도 높고 진입 장벽이 높지 않았다. 특히 살롱용 제품보다는 시판 제품이 차별화하기 쉬워 전략적으로 접근한 것. 준비 기간만 꼬박 1년이 걸렸다. 품평회만도 4,5개월이 들었다. 헤어 디자이너와 성형외과 의사 및 연예인을 불러 제품 평가를 맡겼고 전문점주들의 의견 듣는 것을 잊지 않았다. 역시 점주들은 달랐다. 모발의 부피감을 살리고 에센스 판매에 대한 노하우 등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품평과 함께 마케팅까지 덤으로 배웠다. 박 대표는 자신감을 가졌다. 시판으로는 아직 고객을 만족시키는 제품이 별로 없고 그 때문에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도 깨달았다. 미용실에서 쓰는 수입제품과 같은 품질에 합리적인 가격이면 통한다고 판단했다. 고생한 사람은 박 대표만이 아니다. 제조를 맡은 제니코스는 더 열성이다. 프로테인 왁스를 만들어 내고 용기에 진공 펌프 방식을 도입한 것도 이들과 상품 기획회의를 통해 얻어진 결과다. 이렇게 해서 에센스 샴푸 왁스 등이 전문점에 나간 지 이제 겨우 한달. 실적을 말하기 어렵지만 어느 곳에서는 에센스 120개가 일주일 만에 다 팔려 재주문이 들어올 정도라고 한다. 잘 팔려서가 아니라 자랑이 많다. 에스페리언자 제품엔 인도의 전통 건강의학 처방인 아유르베다의 메카니즘을 적용했다고 한다. 가려움증과 비듬을 없애주는 성분인 님오일이 대표적. 이는 국내에서 구할 수 없어 모두 인도에서 공수해온다. 또 모발 성장에 도움을 주는 시카카이 원료도 비싼 값에 들여오고 있다. 특이한 것은 마늘 생강 성분이 들어간다는 것. 이어 7월 중에는 탈모 방지 전용 제품이 출시를 기다리고 있다. 모 벤처회사와 제휴를 맺어 샴푸를 내놓을 예정이다. 바디 제품은 8월에, 기초 제품은 10월 쯤 모습을 보인다. 물론 헤어도 후속 제품을 계속 낸다. “기초 제품은 원료 컨셉을 다 잡았어요. 여느 제품보다 안티에이징 효과가 1.5~2배 정도 됩니다.” 마늘 생강이 들어간다니 특이할 것 같다. 클럽씨엠은 수입 제품을 유통하기도 하며 브랜드 마케팅으로 돈을 벌고 있다. 웹 솔루션 등 e비즈니스도 주 수입의 하나다. 화장품 회사 두어 곳을 돌며 화장품 기획과 유통을 섭렵한 박 대표. 에스페리언자는 말 그대로 박 대표에게 새로운 경험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 에스페리언자의 로고처럼 말고삐는 박 대표의 손에 쥐어졌다. 시판이라는 거친 들판에서 박차를 가하는 일만 남았다. 엄정권 기자 tastoday@csmt.co.kr 사진 복세욱 기자 ricky76@csmt.co.kr   webmaster@geniepar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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