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었다. 딱히 할 말은 많지 않아도 입을 반쯤 벌린 채 맥없이 웃으며 반겨 줄 것만 같았다. 역시 털털한 옷차림에 머리는 손으로 대충 쓸어 넘기고 다소 구부정하게 손을 내민다.
바로 에뛰드 이민전 대표. 이러한 캐릭터로는 젊은 여성들에게 요즘 말로 ‘비호감’인 것 같은 데 왜 여직원들에게 인기 있다고 소문이 났을까. “흐흐 제가 다 스파이를 심어 놨거든요.” 눙치더니 “우선 직원들에게 편안하게 대해요. 먼저 가서 어깨도 툭 치며 말도 걸고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사적인 관심도 보이며 친밀감을 느끼도록 만들죠.” 뭐 별 것 아니네, 저러다 성희롱으로나 몰리지 않을까 기자가 속으로 생각했지만 인터뷰 중간에 그 해답이 절로 나왔다.
이 대표는 브랜드숍의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에뛰드하우스와 에뛰드 시판, 에스쁘아 사업부를 맡아 바쁘다. 얼마 전 에뛰드하우스 명동점에 나가 매장 일일체험을 했다. 흰 와이셔츠에 빨간 넥타이를 맸다. 담당은 계산대. 포스로 계산하는 데 교육을 받았다지만 당연히 서툴다. 어느 손님에게는 이중계산을 했고 어떤 손님에게는 3개를 2개로 계산했다. 나중 차액은 말 그대로 이 대표가 ‘꼰아 박았다’. 그래도 그날 매출이 평소보다 40%나 늘었기에 체면이 섰지, 매출이 적었다면 말이 아닐 뻔했다. 어떤 제품이 제일 잘 나갔을까. 단연 블랙헤드 오프 오일이라고 답한다. 지금까지 5만개 팔린 효자라고 말한다.
왜 에뛰드하우스가 잘 될까. “브랜드숍 후발 주자로서 역발상으로 나갔죠. 전혀 화장품 매장 같지 않은 화장품 매장. 이것이 기본이었습니다.” 그리고 매장 컨셉 디스플레이는 전적으로 여직원들의 워크숍에 맡겼다. 남자는 터럭도 안보이고 여자들만 모여 끙끙댔다. 소비 주체가 여자인데 여자가 매장 컨셉을 주도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매장 인사법도 손님이 나갈 때 “안녕히 다녀오십시오”라고 한다. 집(하우스)에서 식구(손님)가 나가니 그럴법한 인사다. 이러한 매장 컨셉이나 손님 응대 같은 것이 모두 직원들의 머리에서 나왔고 이 대표는 그저 자리를 만들어 주고 나중 설명만 들었다. 하의가 상달되니 직원들이 좋아 했다. 되는 구나. 이 대표는 자신이 펴 준 멍석에서 신바람이 도는 것을 느꼈다. 직원들의 신바람은 대표 방까지 접수했다. 빈 회의실이 없다며 밀치고 들어와 대표가 있건 말건 떠들어 대고 대표에게 즉석에서 묻기도 했다. 이렇게 에뛰드는 벽이 없어지고 언로는 자연스럽게 흘렀다. 비로소 이 대표가 ‘호감’을 획득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같이 술자리에서 어울리고 망가지기도 여러 차례였다. 그러나 몸으로 때우는 것보다는 진정 직원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이런 생각과 호흡의 일치라는 이 대표의 판단은 옳았다.
이 대표는 이때를 두고 직원들의 눈이 빛났다는 말로 대신했다. 이처럼 만든 것은 이 대표의 ‘비전론’이다. 실험정신 도전정신을 강조하며 젊은 직원들의 열정에 불을 지폈다. “지난해는 정말 힘들었어요. 매출도 안 좋고 사기도 전만 못했죠 . 에뛰드와 에스쁘아의 합병은 자칫 직원을 서로 뜨악하게 만드는 악재로 작용할 수도 있었기에 더욱 불안했습니다. 다들 여름휴가도 못 갔어요. 직원들에게 정말 미안하죠. 간부 사원들에겐 모범을 보이라고 했습니다. 휴가 안가고 봉급 덜 받으라고요.” 비전 빙자 노동력 착취죄 아닌가.
에뛰드가 잘 된다 함은 밖으로 드러난 매출 상승, 하우스의 선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같은 직원의 눈빛에 있었다. 직원들 눈빛엔 CEO의 비전이 담겨 있었기에 가능했다.
“매스 시장의 대표 브랜드로 키울 것입니다. 우리 역량이면 충분합니다.” 젊고 강한 기업 에뛰드, 젊고 강한 CEO 이민전 대표의 비전이다. 직원들은 또 한번 ‘비전 빙자 노동력 착취’에 시달릴 판이다.
엄정권 기자 tastoday@csmt.co.kr
사진 복세욱 기자 ricky76@c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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