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점이 내부적으로 구조적인 모순을 안고서도 그 체제가 붕괴되지 않은 것은 아직까지 대리점을 운영하려고 하는 희망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떤 지역의 대리점이 수익을 내지 못해 폐업할 경우 그 자리를 대신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그나마 운영비라도 나오는 메이커의 대리점 자리에는 수십명이 몰려서 지원하기 때문에 대리점 체제가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대리점이 별다른 수익을 내지 못 하는데도 불구하고 희망자가 넘쳐나는 것은 누구나 손쉽게 뛰어들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대부분의 대리점은 담보물만 있으면 바로 운영이 가능하다. 최소 3∼4천만원만 있으면 아파트 등 부동산을 담보로 잡혀 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사업을 하려고 해도 자본 때문에 시작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대리점은 안성맞춤인 셈. “마음 같아서야 소매점을 하고 싶지만 자본이 안 되니 어쩔 수가 없죠. 자금에 대한 부담없이 손쉽게 시작할 수 있기에 뛰어들었지만 운영하기가 너무 힘듭니다.” 부산 남포동에서 대리점을 운영하는 C사장의 솔직한 말이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지만 수익 창출은 어렵다는 설명이다. 강서지역에서 대리점을 운영하는 P사장은 대리점의 미래에 대해 더욱 부정적이다. “메이커가 대리점을 운영하는 이유가 제품 판매 때문이 아니라 담보물 때문인 것 같습니다. 대리점 담보물로 인해 메이커가 성장하는 것이죠.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처럼 대리점이 어려운데 왜 개선방안을 내놓지 않겠어요?” P사장의 말에 무리가 따르긴 하지만 실제 많은 대리점주들이 P사장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대리점의 열악한 상황을 알면서도 개선책을 제시하지 않는 것이 대리점의 담보물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담보 믿고 시작했다가 담보마저 잃는 억울한 처지 대리점의 분위기가 이 정도로 나빠진 데는 메이커의 책임이 적지 않다. 개선방안을 소홀히 한 것은 물론 대리점의 관할지역을 분할해 점주들의 인심을 잃은 것이다. “메이커에서는 대리점이 돈 버는 걸 못 봐요. 열심히 영업해서 매출이 조금 늘만 하면 대리점을 둘로 쪼개죠. 유통의 힘이 커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인지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좀 커지겠다 싶은 대리점은 싹부터 짤라 버립니다.” 관악지역에서 5년째 대리점을 운영하는 K사장의 지적이다. 이렇게 관할지역을 분할하는 것도 대리점의 사기를 떨어뜨리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신규 대리점의 진출이다. 최근 메이커에서 브랜드별로 유통라인을 세분화하면서 판매사는 동일하지만 시판 조직은 다르게 운영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메이커 입장에서는 컨셉과 타깃층을 달리해 신규 시장을 개척하려고 하는 의도이지만 대리점에게는 시장 축소로 받아들이고 있다. 메이커 영업사원의 ‘대리점 속이기’도 불신을 불러오는 한 병폐. 제품이나 재고 관리를 조직적으로 하지 않는 대리점의 허점을 이용, 메이커의 일부 영업사원들이 제품 갯수를 속이거나 금액을 틀리게 기재하는 것이다. 한 때 모 메이커의 영업사원이었던 L씨는 “영업사원이 대리점주를 속이는 일은 종종 있다”며 자신도“가끔씩 제품이나 판촉물의 수량을 틀리게 공급해 준 적이 있다”고 실토했다. 이런 일들이 대리점가에 소문이 퍼지면서 대리점측에서는 메이커를 불신하게 되고 수익 개선에 대한 희망을 못 갖게 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리점에 대한 개선방안은 하루가 시급한것이 현실이다. 대리점이 붕괴됐을 경우 메이커가 받을 피해는 불을 보듯 뻔하고 그 틈을 타 수입품들이 직거래 시스템으로 대거 공략해올 위험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유통 전문가들은 이제 메이커와 대리점과 전문점은 한 몸이라는 인식으로 상호 발전적인 영업과 마케팅 정책을 펴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메이커는 대리점의 수익 구조를 개선하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판매 지원책을 펼치고, 대리점 또한 경영이 어렵더라도 제품을 덤핑처리해 메이커에 피해를 주는 행위는 자제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진정한 공생의 마인드로 대리점 살리기에 나서야 할 시점이다. <최철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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