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의 화장품회사라고 프랑스가 자랑하는 공개회사인 로레알이 17년 만에 최고 경영자를 바꾸기로 결정했다. 세계 화장품업계에서 최정상급으로 평가되는 영국·네덜란드계의 유니레버와 일본의 시세이도 최고경영진 변화와 거의 동시에 일어난 로레알의 CEO 교체는 급작스레 이뤄진 것이기는 하나 정교하게 잘 계획되어온 로레알다운 조처로 평가된다. 린제이 오웬 존스 회장 겸 사장은 3년 전 이미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40년 가까운 봉직이 될 60세가 되면 은퇴할 것이라고 밝혔었다. 로레알의 새 CEO로 유력한 후보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쟝 폴 아공 미국지역 사장이 이번 후임자로 확정됐다. 올 48세의 아공 사장은 오는 여름 뉴욕 근무를 끝내고 파리 본사로 돌아가 3월이면 59세가 되는 오웬 존스 회장과 1년 정도 함께 근무하게 되며 내년 4월 사장으로 정식 취임하게 된다. 오랜 재임기간 내내 연율 10%에 가까운 매출증가와 이익을 올리며 로레알을 다민족, 다국적 기업으로 확실하게 세계시장에 자리잡게 한 오웬 존스 회장은 그간 여러 곳에서 들어온 최상의 찬사들을 뒤로하고 이사회장으로 물러나 전략수립과 회사지배 구조 문제만 자문하게 된다. 오웬 존스 회장은 회장직마저도 “운전대는 둘이서 잡는 것이 아니다”며 오래 머물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영국 웨일스가 고향인 오웬 존스 회장과 프랑스 출신의 신임 아공 사장은 모두 일생을 바쳐 로레알의 영업, 관리, 해외 등 전 부서에서의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며 뛰어난 경영 능력이 검증된 정통 로레알 맨들로 정열적인 일벌레란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오웬 존스 회장은 집중적이고도 격렬하게 일을 하며 직원들에게도 요구가 많았으며, 50세 때까지는 여가에 경주용 자동차를 몰며 입상까지 했고 이후에는 보트경기로 긴장을 풀어온 스타일이다. 한편 일하는 데 열정적이고 철저해서 물샐 틈이 없는 아공 사장은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으며 직원들에게 좀더 자상한 편이어서 오웬 존스 회장과는 분명히 다른 면을 지니고 있다. 분주하고 요란스러운 뉴욕 생활을 즐기기보다는 자주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저녁시간에 맞춰 퇴근하길 좋아하는 타입이다.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으로 1978년 로레알에 들어간 아공은 세일즈와 마케팅 직책 3년 만에 그리스 지배인이 되었다. 해외지사 중 최저의 영업실적으로 5명의 후보자가 퇴짜를 놓은 곳에서 아공은 일을 잘 했다. 다시 본사에서 로레알 파리 브랜드의 지배인을 거쳐 비오템의 세계 지배인이 된 것이 1989년, 유통경로에 혼란을 겪던 비오템의 브랜드 포지셔닝을 확실하게 해놓은 공을 세웠다. 1994년 독일 지배인이 된 아공은 또 한번 능력을 착실히 보였다. 유럽의 인기 대중용품 제이드의 합병을 진두 지휘했고 메이블린 획득과 유럽 평정의 길을 이때 닦아 놓았다. 1997년부터 2001년까지는 아시아 지역 총지배인을 지냈다. 개인 소비자용 대중제품은 물론 미용실 제품, 백화점 등 고급제품에 이르기까지 전 분야에 걸쳐 아공의 손길이 닿았다. 2001년 2월 미국지역 사장이 된 아공은 위기를 기회로 돌려놓았다. 9.11 테러 사태로 곤두박질한 백화점과 고급제품시장에서 모두가 불가항력이라며 두 손을 잡고 있는 사이에도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집중적 경영 스타일로 반전을 일궈냈다. 미용실 등 전문시장과 대중용품시장을 집중공략하며 로레알은 침체된 미국 시장에서 대부분의 경쟁사들이 부진했던 작년에도 성장을 이끌어냈다. 로레알의 엘리트 간부들과 마찬가지로 해외근무에 치중한 아공 사장의 이력을 보면 4,5년마다 찾아온 변화와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 성공을 만들어 냈다. (427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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