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둥이. 인생의 조각칼은 이마에 깊은 골을 만들었고 눈 밑의 살점은 풍상(風霜)의 무게를 힘겨워 한다. 젊은 시절의 푸른 꿈이 탈색된 검버섯 하나가 옹이진 듯 달라붙었다. 핸들을 잡은 두 손에 힘이 가더니 이내 눈가가 파르르 떨리며 아득한 추억으로 젖어든다. 피어리스와 함께하는 아이피어리스의 민양기 대표. 민 대표는 지난 1975년 피어리스가 대우에 합병되며 뛰어든 제2창업 세대의 핵심 멤버. 이후 20여년 전성기를 누리던 피어리스. 당시 피어리스 제품을 애용하던 아가씨는 이제 귀밑에 흰머리가 났을 정도로 추억의 브랜드 피어리스. “당시엔 정말 잘 나갔죠. 만들어만 놓으면 날개돋친 듯이 팔렸으니까요.” 알로에를 주성분으로 한 모드니에, 미다모아 등으로 히트 행진을 하던 피어리스는 87년 당시 리포좀이라는 새로운 기술로 화장품 업계를 뒤흔든다. 바이오 개념을 도입한 리포좀은 지금의 나노기술. 추억의 갈피는 어느 덧 90년대 월드스타상 몽드 셀렉션 그랑프리로 넘어간다. 세계적 권위의 상을 수상, 화장품 업계의 이정표를 세운 것으로 아직 피어리스의 자부심으로 남아 향수에 젖게 한다. “지옥훈련을 마친 기분입니다.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아 이제 막 새로 태어난 느낌이죠. 지금까지 몰랐던 힘이 생깁니다.” 민 대표는 OEM ODM회사 아이피어리스의 의지를 다진다. 아이피어리스에는 피어리스 48년의 혼이 배어 있다. 전통의 기술과 품질 디자인 유통의 노하우까지 고스란히 아이피어리스에 배어 있다. 어떤 가격대 어떤 타깃에도 맞는 제품의 생산이 가능하고 컨설팅도 제공한다고 민 대표는 말한다. 아이피어리스는 특히 마스카라 아이라이너가 강하다고 평한다. 흔히 말하는 점막 부위 제품으로 멸균기를 갖추지 않았다면 품질을 의심받는다고 한다. 옛날 얘기 하나 더. 90년대 공전의 히트를 친 피어리스 크림 마스카라는 당시 수천만개 팔린 것. 피어리스 영광을 재현하는 어깨가 무거울 것 같았다. “그래서 글로벌정신을 강조했습니다. 사명 앞에 아이(i)를 붙인 것도 그런 뜻이고요. 세계 시장 개척이 급합니다.” 몽골에선 피어리스가 선두라고 자랑한다. “과거를 곱씹고 있기엔 현실이 너무 급박하고 미래 또한 불투명합니다.” 민 대표는 이제 50년 그루터기에 새싹을 피우고 있다. 잠실서 출발한 승용차는 이제 안성으로 접어들었다. 너른 벌판 부지런한 농군의 손길이 바쁘다. 검붉은 속살을 드러낸 밭고랑마다 봄냄새가 가득하다. (380호 3면) - 엄정권 기자 tastoday@csmt.co.kr - 사진 복세욱 기자 ricky76@c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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