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씨는 제품을 받아보고 진짜 베르사체가 아니라 실제로는 ‘H.K 알프레도 베르사체’라는 유사상표의 국산 제품임을 알게 됐고, 제품도 조악하다고 느꼈다.<사진>
사실상 택배비와 세금이 상품 값이라는 점을 깨닫고 반품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제주도의 최모 씨(여. 40세)도 거리에서 ‘론다 폴로’라는 명품 브랜드 화장품을 무료로 준다고 해서 주문했다가, 제품을 받아보고 뒤늦게 취소하려는데 애를 먹고 있다며 하소연한다.
‘화장품 사기 판매’ 의혹이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고가의 유명 상표 화장품을 공짜로 준다고 속이고 세금과 발송비조로 비용을 청구하는 방식으로 판매하는 것이다.
브랜드와 가격을 속임으로 인해 소비자들이 금전적 정신적 피해를 보는 것은 물론 상표권 문제로도 심각한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다.
베르사체의 경우 지난 2000년 8월 소송을 통해 국내에서 ‘알프레도 베르사체’ 등 유사상표가 쓰이지 못하게 됐다. 비슷한 예로 ‘구찌’와 ‘파올로 구찌’의 분쟁을 들 수 있는데 구찌가 승소했다.
당시 소송을 맡았던 법무법인 화우의 이숭희 변호사는 “국내에서는 알프레도 등 베르사체 유사상표를 쓸 수 없다”며 명백한 유사상표 사용임을 지적했다.
H.K 알프레도 베르사체와 론다 폴로 등은 모두 ‘인터메틱’이라는 회사가 OEM 주문으로 납품 받아 전문 판매상에 공급하고 있다. 이 회사는 그 밖에도 ‘폴 모리아’ ‘크리스찬 리버트’ ‘엘렌 스텔라’ 등 모두 10여 가지가 넘는 브랜드를 보유하면서 똑 같은 용기에 컬러와 브랜드만 다른 화장품을 내놓고 있다.
이 같이 국내서 생산된 저가 화장품을 고급인 것처럼 속여 소비자들에게 판매해온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한국소비자보호원에 따르면 지난해만 해도 길거리에서 미성년자 등을 현혹해 화장품을 판매한 피해 상담 사례가 1,207건이나 된다. 마찬가지로 외국의 유명상표를 흉내낸 것으로 피해 당사자뿐 아니라 가정 문제로도 비화돼 심각한 문제가 됐다.
최근의 사례가 종전과 달라진 점은 신용카드 할부로 수십만원씩 결제하게 해 무리하게 폭리를 취하는 대신 고급 제품을 공짜로 주는 것처럼 속여 판매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 대상도 미성년자에서 일반 소비자로 폭이 더 넓어졌다. 이는 기존 방식이 언론과 소비자들의 뭇매를 맞았고, 신용카드 소비 급감에 따라 판매 자체가 위축됨으로 인한 타개책으로 분석된다.
소보원 서비스팀 김경순 씨는 “올 들어 화장품 관련 전체 상담 건수는 줄었지만, 유명상표 오인 판매 및 반품 처리 거부 등의 사례는 여전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인터넷에서도 관련 화장품 브랜드로 인한 피해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편 인터메틱에서 공급하는 제품을 판매하는 업체의 관계자는 “화장품을 취급하면서 소비자들의 클레임이 너무 심해 사업을 포기했다”며 “2달간 1500만원 가량의 손해를 봤다”고 자신도 피해자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판매한 제품이 유명 브랜드의 유사상표인 점과 소비자들을 가격으로 현혹한 것에 대해서는 답변을 피했다.
브랜드를 보유한 공급원인 인터메틱 측엔 연락을 시도했지만 하루 종일 사무실 전화를 받지 않았다.(6월 29일 현재)
베르사체 브랜드 화장품의 정식 수입·판매사인 정하실업은 본의 아닌 피해를 입고 있다. 소비자들이 같은 베르사체로 오인하고, 브랜드의 이미지가 훼손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하실업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유사 브랜드와 쉽게 혼동하는 것도 큰 원인”이라며 “소비자들의 피해가 없도록 꾸준히 광고·홍보할 것”이라고 밝히고 앞으로 공식적인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한 업계 관계자들의 반응은 “화장품 경기 자체가 안 좋은 마당에 국산 화장품의 이미지를 망치고 있다”는 것으로 모아진다.
한 중견 화장품 회사 관계자는 “아무리 경기가 어렵다 해도 정도를 지켜야 한다”며 “소비자들이 화장품 소비 자체를 꺼리거나, 백화점으로만 몰릴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방문판매 화장품 회사의 한 관계자는 “소비자를 현혹시키는 판매 방식 때문에 건전하게 판매되는 방판 제품까지 매도된다”며 근절돼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394호 5면)
- 이봉구 기자 viewsion@c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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