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 우윳값도 모자랄 정도였어요.” 보름 동안 허탕친 초보 세일즈우먼은 마지막 고객을 만나고 이튿날 사표를 쥔 채 출근한다. 그때 바로 첫 주문이 들어온다. 아직 잊을 수 없는 여의도 금산빌딩의 노처녀. 그 노처녀가 박형미의 방아쇠를 당겨준다.
최근 베스트셀러에 오른 자전 에세이 ‘벼랑끝에 나를 세워라’를 펴낸 화진화장품 박형미 부회장. 책이 너무 잘 팔린다며 연신 웃음이다. 어느 기업은 단체로 주문했고 여고생들도 줄을 지어 사간다고 한다.
모 국회의원은 전화를 걸어 “박 부회장을 다시 보고 화진에 대해서도 새롭게 인식했다. 내가 잘못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또 전국에서 강연 요청이 줄을 잇는다.
자신을 벼랑끝에 세우라니, 떨어져 죽으란 말인가. 박 부회장의 벼랑론은 이렇다. “떠밀려서 벼랑에 서지 말고 스스로 세워야 합니다. 운명아 비켜라, 내가 간다라는 뜻이죠. 그리고 목숨을 걸고 자신의 정신적 에너지를 모두 쏟으세요.” 박 부회장의 체험이 증명한다.
15년 전 출근하며 18개월 된 아기를 남에게 맡기고 퇴근길에 아기를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퉁퉁 불은 젖 한 번 아기한데 물리지 못했는데 화장품을 다 못 판 채 돌아가다니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팔았다.
벼랑의 또 다른 의미는 정상이다. 거기에 서면 모든 것을 용서하며 이제는 베푸는 미덕을 알게 된다. 그래서인가 카리스마 넘치던 올백머리가 바뀌었다.
“화진 15년은 내 인생의 전부입니다. 제 젊음을 모두 바쳤고…” 영욕 속에서도 앞만 내다보고 달려온 지난 세월. 조금 여유를 찾은 것인가. 이제는 뒷사람들에게 자신을 바치려 한다. 그래서 부드러운 이미지를 내세우려한 것인지도 모른다.
전속 미용사를 두고 매일 만지는 머리. 위엄과 신뢰의 상징이던 헤어스타일은 그녀에게 중요한 마케팅 수단이었고 브랜드 관리였다. 여성에게 머리가 이처럼 중요한 무기일 줄이야.
박 부회장은 야하다. 언제나 짧고 약간 타이트한 스커트를 고집한다. 그래야 비즈니스에 긴장감이 주어진다. 때에 따라 장소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다. 승용차와 사무실에는 늘 옷 몇 벌이 준비돼 있다. 여성에게 옷도 중요한 무기였다.
서울에 와 처음 엘리베이터를 타며 신발을 벗으려고 망설이던 소녀 박형미. 이제 그녀는 ‘화진標 성공 엘리베이터’를 타고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열정과 형형한 눈빛만 뺀다면 그녀는 평범한 아줌마였다. (392호 3면)
- 엄정권 기자 tastoday@csmt.co.kr
- 사진 복세욱 기자 ricky76@csmt.co.krwebmaster@geniepar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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