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어느날, 아내가 ‘거금’을 쥐어 준다. 명색이 사장인데 돈 좀 넣고 다녀야 되지 않느냐는 무언의 배려였다. 출근길 운전 중에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올 여름 휴가비가 평균 얼마 얼마라는 방송을 듣고 사무실에 오자 마자 봉투를 몇 개 준비했다. 비록 매출은 전무하지만 직원들 휴가비는 챙겨 줘야겠다는 마음에서다. 아내의 거금은 그날로 바닥났다. 참으로 간 큰 남자다. 사무실엔 영업사원용으로 준비한 컴퓨터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웨렌그로우 유덕조 대표. 바가지 같은 머리를 손으로 쓱쓱 빗으며 기자를 맞는다. “이제 겨우 시작했어요. 제품 몇 개 내놓았는데 반응이 괜찮아 기분이 좋습니다.” 웨렌그로우의 첫 작품 ‘아디엘’. 원료에서 디자인까지 일일이 챙겨가며 제품을 냈다. OEM사 측에는 ‘잘 비벼달라’고 거의 떼를 썼고 몇몇 유통업자들을 통해 테스트를 마쳤다. 유 대표 말대로 지인들의 도움이 컸던 것 같다. 아디엘은 알프스에서 자라는 에델바이스 성분 추출물을 이용해 보습에 뛰어난 효과를 보이고 피부 노화 방지에 도움을 준다고 설명한다. 제품이 좋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한 다단계업체에서 찾아와 은근히 납품을 종용했다. 한동안 고민한 유 대표는 내 브랜드는 내 식으로 팔겠다고 결정, 청을 거절했다. 월 몇 억 되는 매출을 과감히 포기한 것이다. 당장의 매출보다 조금 먼 장래를 내다 봐야겠다는 생각에서다. 화장품 연구소에 오래 근무했고 시판 경험도 많은 유 대표는 품질 관리는 그런대로 잘 되는 데 유통은 생각만큼 잘 안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리점 구하기가 쉽지 않아요. 경기가 워낙 안 좋은 데다 조금 고르다 보니 시간이 걸리고 있습니다.” 유 대표는 회사를 절대로 크게 키우지 않고 많아야 연매출 300억 수준으로 정했다. 또한 거래 전문점 수도 800개를 넘기지 않겠다고 한다. 시판 경험상 거래 전문점이 이 수준을 넘어서면 관리가 어려워져 가격 질서가 무너지기 쉽다는 것. 유 대표는 하루 종일 제품 개발에 매달린다. 새해 벽두부터 남성용 제품을 내놓고 아디엘 라인도 보강한다. 또 3월에는 메이크업 제품도 출시해야 하니 적은 인력으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회사 이름대로 ‘잘 키우겠다’는 유 대표. “주변 사람들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뼈 있는 한마디였다. (366호 3면) - 엄정권 기자 tastoday@csmt.co.kr - 사진 복세욱 기자 ricky76@c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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