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가는 곳마다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우아하고 부드러운 말솜씨를 가진 젠틀맨인 오스카 드 라 렌타는 향수에 감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마술사이며 클린턴의 취임식 때 부인 힐러리 여사의 드레스를 디자인한 바 있는 패션 디자이너이다. 이미 패션업계에서 명성을 날리던 그는 여성해방운동이 한창이던 70년대에 여성의 아이덴티티 확립을 위해 독립적이며 자신감 넘치는, 그러면서도 여성스러움을 표현하는 향수를 개발해내고자 1977년 향수업계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여성이란 얼마나 깨지기 쉬운 존재인지요! 그러나 남성이 지배하는 직업세계에서 여성이 살아남기 위해서 남성적인 복장을 하던 때였죠. 저는 여성들이 그러는 와중에서 여성스러움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첫 향수는 뜻밖에 대성공을 거두었고, 1978년 국제향수재단(FiFi)으로부터 ‘올해 최고의 향수’상을 타기까지 했다. “물론 유명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제 이름이 영향을 미쳤겠죠. 하지만 여자가 첫 번째 향수를 살 때에는 이름이나 상표나 병 모양, 심지어 포장을 보고 살 수도 있겠지만, 두 번째 병, 세 번째 병을 살 때에는 더 이상 그런 것을 보고 사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원하는 향기를 사는 것이지요. 이정도 되면 이 여성은 브랜드를 쉽게 바꾸지 않으며, 또 바꾸어서도 안 됩니다. 이제 그 향기, 그 향수는 그녀의 개성을 표현하는 서명과 같은 것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이것이 그녀의 아이덴티티가 된 것입니다. 그녀가 방에서 나간 뒤에도 그녀의 향기는 계속 남아 있습니다." 오스카는 유럽 여성과 미국 여성의 차이를 묻는 질문에 “모든 사회가 국제화되어 가고 있는 오늘날 그 차이를 말하기는 힘들다"면서 “입는 옷에 의해 그 여성의 국적을 알 수 있었던 시대는 갔다. 이제는 그녀가 어떤 옷, 어떤 향수를 좋아하는가, 그녀의 취미는 무엇인가, 그녀는 어디를 가기 좋아하는가 등 그녀의 생활방식, 그녀의 개성이 중요한 시대이지 그녀가 어디 사는가는 중요하지 않다"고 대답했다. “제가 패션 디자인을 처음 시작했던 60년대 초 미국만 해도 사귀는 남자, 혹은 남편이 핑크빛 드레스를 좋아하지 않으면 여성들은 핑크빛 드레스를 결코 사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의 여성은 더 이상 그런 것에 의해 구속받지 않고 스스로 결정을 내려 핑크빛 드레스를 삽니다. 개성시대죠." 1992년 오스카가 두 번째로 내놓은 향수 ‘볼 (Volupte)’은 두 번째로 국제향수재단(FiFi) ‘올해의 향수’상을 탔다. 1980년에 처음 내놓은 남성용 향수 ‘뿌르 뤼(Pour Lui)’도 FiFi 상을 받았다. “저는 실제 향수를 사람들에게 파는 화장품 가게나 백화점 매장 판매원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만일 제가 그들에게 저의 향수를 팔 수 있다면 그 향수는 히트를 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야 말로 여성 고객들에게 향수의 추상적인 아름다움을 전할 수 있는 광범위한 지식과 권위와 자신감을 가진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니까요. 향수는 옷과는 달리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예민한 후각에 직감적 혹은 감정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오스카 드 라 렌타는 여성의 예민한 감각을 너무나도 잘 파악하며 향수에 대한 열정으로 넘치는 향수세계의 로맨티시스트였다. <이남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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